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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I

조현

Release Date 2026-04-09
Genre World
Label 디지바이브

Tracklist

  • 01 기념 (Light Born)
  • 02 절기 (Seasons)
  • 03 안탈리아 (Antalya)
  • 04 Instinct
  • 05 비가 (Lament)
  • 06 덧빛 (Afterglow)
  • 07 글리의 꿈 (Gli's Dream)
  • 08 Further
  • 09 감사 (In Peaceful Light)

About This Album

조현 [Gli] 라이너노트 조현에게 핸드팬은 그저 악기가 아니라 모국어이자 신체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2021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감각]에서 그는 이를 중심으로 자연 풍경과 여행의 기억을 풀어내며, 사람들에게 낯선 악기를 통해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열었다. 마치 새로운 풍경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로 엮인 음유시인의 기록처럼. 다섯 해가 흐른 지금, 두 번째 정규 앨범 [Gli]에서는 그 감각과 관점이 조금 다른 곳과 방향으로 흐르는 형태를 들려준다. 전작이 바깥 세계를 향한 모험담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한층 더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고백에 가깝다. 중심에는 앨범 타이틀의 ‘Gli’라는 이름이 있다. 직접 설명을 듣지는 않았지만 조현이 자신의 음악만큼 세상에 솔직하게 드러낸 일상을 통해 유추할 때, 아마도 그의 삶에 새롭게 등장한 존재, 새로운 가족, 새 생명을 가리키는 이름일 테다. 이에 따라 [Gli]는 한 여행자의 익숙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탄생과 변화된 시간의 흐름을 달리 바라보는 음악이 된다. 작은 편성의 기악 앨범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가사가 없어 사건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주도 쉽지 않다. 대개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떤 상태를 만드는가’로 존재한다. 다만 [Gli]는 필연적인 추상성 위에 확실한 이미지의 단서들을 흩뿌린다. ‘기념’ ‘절기’ ‘비가’ ‘덧빛’ ‘글리의 꿈’ ‘감사’ 같은 제목은 특히 감정의 방향과 시간의 좌표를 선명히 제공한다. 이때 핸드팬이 지닌 고유한 소리와 이미지가 작동한다. 두드리는 순간 울림을 만들고, 울림은 그것이 사라지기 전 그 다음을 잇는 섬세한 변화를 낳는다. 소리가 늘 탄생과 소멸의 중간 상태로 존재한다. 금속의 공명이 단단한 물성에서 출발하지만 곧 공기로 흩어지며 잔향이 감성으로 남는다. 조현은 악기의 본성을 이번 앨범의 주제와 맞물리게 했다. [Gli]를 새 생명과 시간의 흐름을 반기는 작품이라고 할 때 핸드팬은 시간을 듣는 그릇이 된다. 음을 두드릴 때마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고, 현재의 만짐은 과거의 잔향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만짐 사이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거대한 사건이 아닌 사건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미세한 경계, 하루와 일상을 바꾸는 작은 깨달음 같은 것들이다. 이번 앨범에서 조현은 두 곡의 피처링을 제외한 채 대부분의 연주를 직접 맡았다. 전작에서 가야금과 해금,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등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다른 색채를 곁들였다면, 이번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했다. 핸드팬은 타악기이자 선명한 선율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다. 그는 이 두 성질을 적극적으로 교차하고 활용함으로써 리듬과 멜로디를 동시에 직조한다. 화려한 변주나 극적인 전개 대신에 미세한 음색 변화와 공간의 울림으로 차분히 완성되는 서사를 만든다. 첫 곡 ‘기념’은 세계로 들어서는 문처럼 열린다. 전통 타악, 심장 박동을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시작해, 핸드팬 연주 뒤로 패드 신스의 사운드 스케이프가 넓고 영롱한 울림, 몽환적인 리버브를 만들어내며 충만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어지는 ‘절기’에서는 배경의 새소리와 물소리가 배경을 이루며 밖으로는 계절의 흐름을, 내면에는 변화하는 삶의 절기를 떠오르게 한다. 튀르키예의 도시 이름이기도 한 ‘안탈리아’는 잔잔한 리듬과 이를 다소곳이 따르는 신스 위로 흐르는 마치 현을 두드리듯 부드럽고 경쾌한 터치가 이국적이고도 편안한 풍경을 겹쳐 놓고, ‘Instinct’는 기타와 핸드팬이 서로의 선율과 리듬, 스트로크를 보완하고 중첩하며 훨씬 역동적인 에너지를 이룬다. 앨범의 중반부에는 두 연주자가 등장한다. ‘비가’에서는 김오키의 색소폰이 핸드팬 위 그만의 프레이즈를 쌓는다. 조금씩 어긋나 있던 선율과 박자가 서서히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김오키의 자유롭고도 정돈된 애드리브는 일순간 들이닥치는 게 아닌 점차 번지는 슬픔을 담기에 적합하다. 이어지는 ‘덧빛’은 빛 위에 또 다른 빛이 겹쳐지거나 더해지는 모습을 표현한 우리말이다. 첼로(이금희) 대선율의 긴 호흡과 묵직한 보잉이 핸드팬의 짧은 울림을 감싸고 보완하며, 산란하는 빛에 광채와 온기를 다시 더한다. ‘글리의 꿈’은 앨범에서 가장 사적인 순간이다. 아이의 옹알이 소리가 새근거리는 숨소리로 이어지며 이내 자장가처럼 시공간을 달랜다. ‘Further’는 내면을 파고 들다가 다시 한번 먼 지평을 바라보게 하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촘촘한 리듬과 전자 비트를 바탕으로, 후반부터 조현의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한 디저리두가 등장해 너비와 깊이를 확장하고, 마지막 곡 ‘감사’에서 서정적이고 미니멀한 핸드팬 선율로 한 편의 동화, 동요와 같은 마무리를 짓는다. 평범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의 빛을 남긴다. [감각]의 조현에게서 난 몽상가, 모험가의 유랑기를 발견했지만, [Gli]의 조현에게서는 삶을 예찬하는 철학가의 수기를 읽게 된다. 고요한 명상의 시간, 흥미로운 소리의 향연 너머 어떤 노래나 밴드 형태보다 또렷한 감정이 스며 있다. 우리 삶이 넓어질 때, 시간의 감각이 한층 입체적으로 변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 대중음악평론가 정병욱(Byungwook Chung) [Credit] Produced by Ash Co-Produced by Jo Hyun All songs composed by Jo Hyun All songs arranged by Ash, Jo Hyun Saxophone by Kim Oki Cello by Lee Kum Hee Mixed and Mastered by Ash Sound Works Studio Recorded at Didgevibe Studio Artwork by Shin Dong Hyuk Design by Yim Seo Hee & Nam Ho Kyoon